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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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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각각 어떤 일을 하기 위하여 태어나나 봅니다.
대학시절부터 우리 것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것을 알고 만들어내고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연구하던 것이 오늘의 박물관이란 결과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너무 막연했습니다. 그래서 무모하게 시작했습니다. 아마 제대로 알았더라면 시작을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관념 없이 시작한 일이라 어려움이 숱하게 몰려왔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고민할 틈도 없이 이런 저런 물건들을 수집하고 거의 1년간은 전시대가 될 만한 물건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옷가게를 정리한다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갔고 모델하우스를 철거한다는 소리가 들리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 사정을 했습니다.
추운 겨울 인부들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감기에 걸려 몇 달 동안 기침이 끊이지 않는 아내를 데리고 경기도 이천, 서울까지 가서 모델하우스, 삼성전자, 학원 철거 물품들을 가지고 올 수 있는 한 다 가지고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묻더군요. 사람들이 우릴 뭐 하는 사람으로 쳐다볼까?
고물상하는 부부로 보지 않을까 하며 같이 웃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이 있었기에 떳떳하고 당당했습니다.
이제 다시 내 인생에서 이런 일들을 시도해 볼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더 혼신을 다해 보려합니다.
이때껏 제가 해온 일이 지역을 연구한 일이고 후세를 가르친 일입니다.
그래서 당진은 저에게 너무도 소중한 곳입니다.
당진을 위해 좀 더 희망적이고 발전적인 일들을 이 박물관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문화에 소외된 당진이 아니라 문화를 이끌어 가는 당진을 만드는데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합니다.
이곳에 오셔서 문화를 느끼고 논하며 제 충전하는 문화의 장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곳은 여러분들이 만들어 나가는 곳이며 저는 기꺼이 이 장소를 제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곳에 경원각지에서 오신 분들을 위해 박물관에 대해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도량형은 참으로 소중한 문화를 갖고 있는 귀중한 우리 선조들의 유물입니다.
도량형은 인간들이 모여 살면서 시작된 사람들과의 약속이고 그 약속의 출발이며 기준입니다. 물건을 팔고 사는 근본개념이며 문화발전의 원동력입니다.
저는 도량형을 통해 기준과 출발이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막연하고 유물 몇 개 모아 놓고 어찌할까 숱한 날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도량형이 기준이고 출발이라는 결론을 얻고 다양하고 많은 물건들을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의 척도이고 모든 것을 측량하고 측지하는 기준이고 출발이기에 너무도 많은 할 일을 찾았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모든 물건, 모든 삶의 개념이며 원리의 출발입니다.
길이, 부피, 무게, 더 나아가 방위, 시계, 전기, 전압, 기압 등 측량 측지의 개념으로 수학의 근간이며, 과학의 원리로 이곳은 수학을 배우고 익히는 수학, 과학의 공간이며 인간 삶의 애환이 깃든 문화의 근간입니다.
또한 매매와 시장의 원리를 이루는 경제생활의 토대입니다. 기업들은 지금 표준화전쟁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삼성과 애플의 사활을 건 싸움 그 근간은 도량형의 통일을 위해 역사적으로 각 시대마다 도량형의 개혁은 어김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이곳은 우리나라 도량형의 모든 것을 수집하고 연구해 도량형 발달사뿐만 아니라 도량형과 관련한 민속, 그리고 그 개념과 원리를 정리해 체험하는 교육의 장으로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도량형은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와 도량형 제도가 제정되어 농경문화를 확립시켰습니다. 국가 조세수취와 상업 활동에 적극 활용되었고 중국식 척관법(尺貫法)을 사용하였습니다. 고구려 유리왕 37년(18) 제수에게 금 10근, 땅 10결 지급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백제에서는 도시부(都市部), 신라에서는 시전(市典)이라는 도량형제도 감독관청을 두었습니다. 청동제 십이지상 저울추가 경상북도 경주시 성동의 옛 절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양반들의 전장제도가 설치되어 측지에 지척(指尺), 즉 뼘을 사용했습니다. 세종대왕때는 결부제(結負制)와 동시에 수등이척(隨等異尺)이라고 하여 각 마을별로 토지측량반을 조직하여 수탑과 면적 및 공급을 정하여 국가조세정책을 확립시켰으며 특히 도량형 제도를 중시하여 길이를 재는 데는 장(丈), 척(尺), 촌(寸), 푼(分), 양을 재는데 곡, 두, 승, 홉, 작(勺), 무게는 양(兩), 전(錢), 푼(分), 리(厘)의 각종 도량형기를 호조의 탁지부에서 제작 낙인하여 대중에게 공급하였습니다. 그리고 매년 정기적으로 그 기밀을 검정하는 엄격한 도량형 제도를 제정하여 당시 농업 경제의 발전은 물론 역학, 수학, 천문학, 기상학이 발달하여 천체관측기, 측우기, 자격루, 고저측량기구 등의 선행적인 도량형을 기초로 하여 제작하였던 것입니다. 실례로 세종대왕때 최초로 측우기에의 강수량 측정을 주척(周尺)을 기준으로 한 양전척(量田尺)의 기준 길이를 배석에 조각하여 서울 수표교를 건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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